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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청년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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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20년 7월 3일, 「영주청년회 설립」 

영주는 삼남의 낙지(樂地). 산기가려(山氣佳麗)하고 토지비옥하며 풍속이 화미(和美)하나 단지 결점으로 보이는 바는 청년자제가 대개 안일과 고식(姑息)의 폐풍(弊風)을 개량치 못하여 용감발양(勇敢發揚)의 정신이 핍소(乏少)함이라.

이로 인하여 당지 유지 제씨가 항상 개탄하며 개량의 방법을 강구하던 바 619일 당군 공립보통학교 내에서 영주청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참석한 인사가 무감 수백 명에 달하였더라

임시 회장 장두규(張斗奎)씨가 개회사를 행한 후 임시 설립 위원이 취지서 및 회칙을 낭독 통과함에 그 목적은 대략 적성함양학문증진체육발전의사교환풍속교정 등이며 순서에 의하여 역원을 선정하고 내빈의 축사가 있은 후 오후 8시에 폐회하였는데, 총회 당일의 입회원이 180여 명이오, 연조 총액이 2천여 원에 달한 대성황을 누렸으며, 피선된 임원은 회장 김보영(金普榮), 부회장 장두규(張斗奎), 총무 이원박(李源博) 이하 제씨이더라.